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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Chosun/네오조선 : TLP

손병희는 소싯적에 김기수를 팼는가?


...이거 이상한 주제이긴 한데
천도교의 교사(敎史)에 보면 손병희가 17세때 길가던 수신사를 팼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잡지 "신인간" (동학 포덕-_-;)146년 1월호 '이야기교사' 중
(손병희는) 타고난 의협심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시절부터 양반들의 행패를 보고 있지 않았다. 17세 때였다. 『천도교창건사』에 의하면 괴산(槐山) 삼거리에 갔을 때다. 어떤 수신사(修信使, 일본을 왕래했던 통신사의 별칭)가 말에 역인(驛人)을 매달고 가는 것을 보았다. 몽둥이로 마복(馬僕)을 때려 쫓고 풀어 주었다.

이 얘기가 손병희 전기문에 보면 좀 자세하게 나오는데,
저 역졸을 풀어주었을 때에 마복이 손병희에게 화를 내자 손병희는 마복에게 대들며 그딴 짓을 시킨 수신사 면상을 보자고 하여 수신사를 패고 훈령을 적은 문서를 빼앗아 연못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의 연도가, 손병희(61년생 영효랑 동갑ㅋ)가 17세때면 1877년이란 소린데, 수신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76년(김기수) 80년(김홍집) 82년(박영효)에 세 번 파견되었다.
77년에 파견된 바가 있는지는 승정원일기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다. 또 혹 77년쯤에 수신사를 파견하려다가 명령서를 탈취당해서 못갔다는 기록이 있거나 하지도 않다-_-;;;

이 사건이 연도가 잘못 표기된 것이고 사실은 76년이었을 거라고 간주한다면, 저 처맞았다는 수신사는 김기수가 될 것이다.
연도를 무시하고 생각해도, 저 수신사들 중에 길거리에서 손응구 같은 날건달(...)에게 맞고다닐 사람은 김기수밖에 없긴 하다. 도덕군자 굉총리가 설마 그런 맞을 짓을 했을 리가 없고, 나중에 손병희랑 친구까지 먹게 되는 우리 젠틀한 금릉위님이 그럴리는 더더욱 만무하기 때문이다.(뱃길로 가서 그쪽 지나가지도 않았지만)


뭐 만일 진짜 김기수 팼다고 한다면, 나는 사실 그놈 멍청해서 좀 때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백번 잘때렸다고 박수쳐줄 것이다.
기껏 갔다와서 제대로 정탐도 못 해가지고 고종 앞에서 '그거까진 안 물어봤는데요'만 연발한 주제에, (그리고 고종의 대답 :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나마 첫번째라고 해서 국사교과서에 뭐 있는 거처럼 나오는 꼴이 아니꼬워 죽겠거든.



그리고 그 다음 문제는 명령서를 연못에다 던져버려서 수신사가 어쩔 줄을 모르고 꽁지빠지게 도망쳤다는 이야기에 대한 검증이다.

(일단 3차인 영효는 기행문 사화기략(>_<)에 보면 인천항을 통해 편하게 왕래했으므로 일정을 비교할 수 없어서 제외한다.)

1차의 경우(4월4일 입시, 4월 26일 부산도착)와 2차의 경우(5월 28일 입시, 6월 15일 부산도착(예정))에 여정을 비교하면 1차의 하행 육로가 조금 수상쩍다. 김기수의 기행문인 일동기유에 보면 하행 육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장무관의 사례책자에 썼다고만 나오는데 그 사례책자 내가 볼 수가 없(;)긴 하지만 아무튼 김기수도 대강이나마 지체한 사항에 대해서는 쓰고 있다. 즉 '떠날 때 조양각(朝陽閣)에서 하룻동안 연희를 벌이고, 오는 길에 범어사(梵魚寺)와 통도사에 들러 이틀 밤을 유숙한 것, 그리고 영남루(嶺南樓 밀양에 있는 누각)에서 어떤 일로 사흘 밤을 유숙한 일과, 달성부(達城府)에서 몸이 피곤하여 하룻동안 머물렀던 일'이라고 말하는데, 하행의 지체는 하루 언급하고 상행의 지체는 2+3+1 총 6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행은 윤 5월 7일에서 6월 1일까지(24일) 걸려 하행(23일)과 비슷하게 걸렸다. 하행을 김기수가 쓴 것처럼 하루밖에 지체를 안 했다면 뭐 한다고 그렇게 오래 걸렸단 말인가? 심지어 김홍집은 하행할 때에 부지런히 예정대로 가면 17일밖에 안 걸려 부산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또 일사집략에 조사시찰단 암행어사 이헌영은 5일 지체하고도 하행 21일 걸렸다.

즉, 이 당시 서울부산간 편도는 부지런히 가면 2주 반 정도가 보통이고, 거기에 지체한 날짜를 더하면 크게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김기수의 저 지체없이 하행 23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일동기유에는 이 일정마저 무지 서두른 거라고 쓰고 있다. 또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는 자료가 없고, 김기수 자신도 이 시기에 대해서는 자꾸 얘기를 피하고 있다. 대체 왜? 남이 알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하여, 결론적으로 김기수가 하행에 손병희에게 처맞았다는 것이 사실일 거라는 심증을 가게 하는 것이다.
상상하면 왠지 우습지 않은가? 김기수, 그 성격나쁘게 생긴 면상이 웬 양아치 소년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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