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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포스팅 하나로 끝내는 근체시 작법


* 다소 비매너한 것 같긴 하지만 그것까지 설명하기는 귀찮으므로 일단 기본적인 한문의 문장구조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시작한다.

사실 한시작법이라는 것은 일종의 퍼즐 내지는 레고 같은 거라서 몇 가지 규칙만 알면 특정한 의미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 끼워맞추는 게 전부인 하나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그런 규칙들을 가르쳐주는 곳을 찾기 힘들거나, 혹 누가 가르쳐준다고 하더라도 무슨 대단히 어려운 것인양 젠체하며 가르쳐주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는 채 딴 세계의 문화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뭐 내가 이제와서 꼭 그런 현실을 특별히 개탄해서라기보다는=_= 그냥 내가 끼적거리는 것들을 보고 주변에서 한시에 대한 이론을 묻는 사람이 몇 명 있길래, 언제 한 번 제대로 정리해서 읽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 포스트를 쓴다.



1. 각 명칭의 정의

한시, 즉 한자로만 이루어진 시에는 '근체시'와 '고시'가 있는데 일단 고시는 음률이 심오하니(라기보다는 작가 창의성을 받는 문제라-_-;) 제끼고 근체시만 논해보겠다.

근체시라고 하는 것은 운율의 어떤 특별한 형식을 지키고 있는 일종의 정형시이다. 이하에 그 형식에 대해서 설명할 테고, 지금은 그냥 단순히 정형시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자.

대충 보면 보통 한시라고 하는 것들은 5자나 7자로 되어 있는 행이 몇 행 있다. 각 행을 구(句)라고 한다. 1구가 5자로 된 것은 오언시, 7자로 된 것은 칠언시라고 하고 근체시 가운데 4구짜리인 것은 '절구', 8구짜리(=2구를 1연으로 묶어 4연이라고도 한다)를 '율시'라고 한다.
(가끔 보면 10구, 12구, 14구 이렇게 더 긴 것도 있는데 그런 것은 '배율'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명칭을 조합해서, 5X4=20자로 된 것을 오언절구, 7X4=28자로 된 것을 칠언절구, 5X8=40자로 된 것을 오언율시, 7X8=56자로 된 것을 칠언율시라고 한다.



2. 구조

 1) 율시

○○○○○ ○○○○○ (기)
○○○○○ ○○○○○ (함)
○○○○○ ○○○○○ (경)
○○○○○ ○○○○○ (미)

오언율시인 경우는 위와 같이 글자가 배열이 될 텐데, 밑줄 친 부분인 2연과 3연은 각 연을 이루는 두 개의 구 사이에 반드시 대(對)를 한다. 1연이나 4연은 대를 하든 말든 상관없다.
'대'라는 것은 문장 구조를 똑같게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응되는 문장구조끼리 의미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 좋다.
각 연의 명칭은 순서대로 각각 기, 함, 경, 미이다.


 2) 절구

○○○○○ (기) ○○○○○ (승)
○○○○○ (전) ○○○○○ (결)

사실 절구는 원래 '율시를 반으로 절단한 것' 정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경우 반드시 대를 넣을 필요는 없지만, 앞 두 구를 대구하거나 뒷 두 구를 대구하거나 하기도 한다. 각 구의 명칭은 소위 기, 승, 전, 결이라는 그거다.


3) 오언과 칠언의 끊어읽기

오언은 대부분 ○○ (띄우고) ○○○와 같이 읽는다. (2+3)
칠언은 대부분 ○○ ○○ (띄우고) ○○○와 같이 읽는다. ((2+2)+3)

그러니까 해석이 그렇게 되게끔 적어주면 된다.
그러나 그냥 대부분,일 뿐이다. 칠언을 2+5가 되게 배열하기도 하고, 송나라 유행으로는(강서시파라고 하는 좀 썩은느낌의 유행이 있다; <-나는 좋아함;;) 간혹 오언을 3+2로 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일 2+5나 3+2 같은 것을 썼다면 전체적으로 그런 리듬이 형성되게 만들어야지, 한 구에서만 그렇게 써서 이상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뭐 어디까지나 센스의 문제.



3. 운율

 1) 운목과 평측

지금은 한자를 애들한테 교육하면서 그런 걸 가르치지 않지만, 원래 한자에는 평성, 상성, 거성, 입성 4가지 종류의 소리가 있었다. 이 중에 상성, 거성, 입성은 '측성'(치우친 소리)이라고 하고 평성은 그냥 '평성'(평탄한 소리)이다. 더 따지자면 평성에 상평 하평이 있기는 한데 별로 안중요하다. 아무튼 이러한 분류를 평측이라고 말한다.
이 분류는 중국어의 4성조와도 비슷하지만, 현대중국어의 발음과 근체시가 만들어지던 당나라 송나라때의 중국어 발음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성조와 평측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입성에 해당하는 소리는 완전히 없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당나라 때의 중국어 발음이 많은 부분 한국식 한자발음에 계승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사람(특히 사투리 쓰는 사람들)이 당송대의 한자 발음을 더 잘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_-;;;; 아무튼.

이러한 평성과 측성들을 종류별로 묶어서, 그 중에서 발음상 라임이 맞는 글자들끼리 묶어서 더 세분한 것이 '운목'이다. 평성에는 30종류(상하 15씩)의 운목이 있고, 측성에는 76종류(상29+거30+입17=76) 의 운목이 있다. 그런데 이 라임 맞춰놓은 것이 시대가 지나면서 발음이 변해서 지금은 같은 소리인데 운목이 다르거나, 운목은 같은데 소리가 딴판이거나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다소는 어쩔 수 없다. 일단은 법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운목표를 찾아가면서 맞춰주는 수밖에.

(*참고하라고 아래에 운목표를 첨부한다.)


2) 압운

그래서 한자를 총합 106가지의 운목으로 나누어 놓기는 했는데 그럼 이걸 어디다가 써먹느냐 하면
시를 지을 때에 짝수구의 끝 글자에 라임을 맞추는 데 쓴다. 거기에 써먹은 운목에 해당하는 글자를 '운자'라고 한다.
그리고 그 라임맞추는 일을 '압운'이라고 하는데, 이건 음악으로 치면 조성을 맞추는 것과도 같아서, 절구 율시 배율 할 것 없이 모든 근체시와 또 웬만한 고시(=자유?시)에서도 압운은 당연히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어떤 고시에서는 중간에 압운자가 변하는 일(변조?!)도 있긴 하다만 여기선 근체시 얘기니까 압운은 당연히 하는 것으로 하고 넘어가겠다.

○○○○★ ○○○○☆
○○○○X ○○○○☆

절구의 경우는 위와 같이 압운해서, 2구와 4구의 끝에는 같은 운목에 속하는 글자를 놓는다. (위 그림은 오언이지만 칠언에서도 마찬가지다)
1구의 경우는 근데 왜 까만별이냐하면;; 당나라때 유행으로는 절구에 '인운(隣韻)'이라고 해서 운자(☆)와 같은 운목은 아닌데 비슷한 발음이 나는 '이웃한 운목'을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아예 저 자리에도 운자를 쓰기도 했다. 단 칠언일때는 대부분 1구에도 운자를 쓴다. 그러나 뭐 칠언에서도 안쓰거나 인운을 쓴다고 해서 절구가 안된다거나 하진 않는다.(뭐 소위 당나라유행;;;) 그냥 그런것은 유행이나 취향이다.

운자는 뭐 거의 99% 평성으로 한다. 절구일때 막 어떤때는 운자가 측성이고 그런일도 있긴 한데 그런 예외적인 케이스는 빼고 생각하면, 운자가 평성일 때 3구의 마지막 글자는 반드시 측성(X)으로 해서 레알 기승'전'결의 느낌을 살려주게 된다.

○○○○★ ○○○○☆
○○○○X ○○○○☆
○○○○○ ○○○○☆
○○○○X ○○○○☆

율시는 위에 보듯이 다른건 다 똑같은데 그냥 길이가 곱하기 2 해서 두배고 5구 끝에는 운자 제한이 없다. 그냥 편하게 아무 글자나 써주면 된다.
칠언율시의 경우는 또한 1구 끝에 (아마 거의 반드시) 압운을 한다. 오언율시는 상관없는데 대부분 1구 압운은 안한다.


 3) 평기, 측기

그럼 마지막 글자가 아닌 자리는 다 맘대로 써도 되느냐! 하면 그런것은 아니다.
오언일때는 각 구의 2, 4번째 글자, 칠언일때는 각 구의 2, 4, 6번째 글자가 규칙에 걸린다.
오언에서 2, 4번째 글자는 평-측이거나 측-평이고, 칠언에서 2, 4, 6번째 글자는 평-측-평이거나 측-평-측이어야 한다.

그런데
1구의 2, 4자가 평-측으로 시작했다면 2구에서는 거꾸로 측-평, 3구에서 다시 측-평, 4구는 원래대로 평-측으로 마무리해야 하고 (평기식)
반대로 1구가 측-평으로 시작하면 2구 3구는 평-측, 4구는 1구와 동일하게 측-평으로 해주면 된다.(측기식)

칠언일때는 2, 4, 6번째 글자가 평-측-평으로 시작하면 다음 구에서는 측-평-측, 측-평-측, 평-측-평 으로 가주면 되고(평기식)
측-평-측으로 시작했으면 평-측-평, 평-측-평, 측-평-측으로 바꿔주면 된다(측기식)

뭐 절구가 아니라 율시인 경우는 그냥 똑같이 한번더 복사해주면 땡이다.


오언절구의 경우에 평성(◎)과 측성(X)의 위치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평기식)
○◎○X★ ○X○◎☆
○X○◎X ○◎○X☆

(측기식)
○X○◎★ ○◎○X☆
○◎○XX ○X○◎☆


 4) 금기 : 측평측, 평평평, 측측측

그런데 그것뿐이면 그만일텐데 근체시에는 소위 금기라는 게 있다. (고시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거)
소위 '고평'이라고 해서 한 구 내에서 측성 사이에 평성이 끼면 안된단다. 즉 '측평측'이 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각 구의 3, 4, 5자(칠언이면 5, 6, 7자)에도 제한이 있다. 즉 3, 4, 5자가 연달아 평평평, 측측측 중 하나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금기를 적용해서 위 평기식 측기식의 평측제한을 다시 써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평기식)
○◎○X★ ○XX◎☆
○X◎◎X ○◎○X☆

(측기식)
○XX◎★ ○◎○X☆
○◎◎XX ○XX◎☆


칠언의 경우에도 그냥 규칙 맞춰서 평성과 측성이 들어갈 자리를 직접 그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러니까 거기에 의미가 되게 말을 만들어 넣는 거지...;;
(.....그러게 퍼즐이라니깐......;;)

평측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글자(○)는 위에 보이듯이 평기식 오언절구에서 6자(그나마도 1구랑 4구의 1,3자는 둘다 측성이면 안된다), 측기식 오언절구에서 5자(그나마도 2구 1,3자가 둘다 측성이면 안된다) 뿐이고, 나머지 14자나 15자는 모두 평측이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데 거기에 알맞은 글자를 '끼워넣어'서 적절한 의미를 가지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어떤 작품이 최종적으로 좋으냐 나쁘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창의적인 마인드와 통시적인 고찰과 형식상의 미학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기본적인 센스는 꼭 한시라거나 혹은 근체시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종류의 창작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사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몇줄 되지도 않는 규칙을 달달 외어서 젠체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말이 되는 말을 쓰는 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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